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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고

부제: 인생은 놀람의 연속이다

1970년대 뉴욕주의 교외에 사는 남자가 있다. 좋아할 수도, 때려치울 수도 없는 직장에 다니며, 마누라 눈치를 보고, 저녁에는 티비 앞에 홀로 앉아 대마초를 피운다. 레이먼드 카버는 단편소설 “대성당”을 통해 진부하기 짝이 없고 나른한 일상의 소유자인 주인공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대성당”은 짧은 문장들로 연결된 힘 있는 단편소설이다. 카버의 문체는 헤밍웨이처럼 간결하며 이름 없는 주인공의 말투처럼 구어적이다. 어휘선택에서 주인공의 느낌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집에 찾아온 손님은 큰따옴표 안에서만 로버트이고 주인공의 생각 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장님이다.

생각의 흐름과 일인칭 서사의 전개가 맞물려 이어지면서 주인공은 속으로 로버트를 까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위해 음식과 마실 것을 내온다. 인물과 장소의 묘사는 지나치지 않으며 빈틈없다. 주인공의 거실에 대해 독자가 알아야 할 사실은 카펫이 깔려있고 컬러 티비와 두 개의 소파가 있다는 것뿐이다. 대성당은 연극 대본처럼 읽히지만, 연극 조의 과장은 없다.

이야기의 매력은 누가 말해도 전혀 의심 가는 부분 없이 사실적인 줄거리에 있다. 이야기는 시각장애인 로버트와 이름 없는 주인공이 서로의 손을 포개 같이 대성당을 스케치한다는 사실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그려지도록 그 최고조 지점까지 올곧게 나아간다.

로버트는 대성당에 대한 정보를 흡수하고 머릿속에 쌓아놓을 뿐, 첨탑이라던가 비행 부벽 등 대성당을 이루는 것들에 대한 개념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로버트는 주인공의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대성당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촉각만으로 대성당처럼 크고 복잡한 물체를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할 뿐이다.

지적 호기심이 강한 로버트와 달리 주인공은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로버트의 축 처진 눈꺼풀이 불쾌하고, 열심히 사는 그에게 대마초를 권한다. 화자인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사실 주인공의 이름은 알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그들 인생의 주인공이고, 주인공은 곧 나니까.

인생의 다른 단락에 서 있는 주인공과 로버트는 대마초를 피고 대성당을 그리면서 놀라움을 맛본다.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배움의 다른 모습일 수 있지만, 눈을 감고 그리는 행동은 모순이다. 그러나 그 모순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주인공은 내가 최근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거나 그에 걸맞은 자유를 내게 허락한 게 언제였냐고 묻는다. 결국, 카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생은 놀람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놀람을 내 인생에서 허락하려면 조금의 모순을 눈감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Photo by Pixabay on Pexels

Published in 책 리뷰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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